[향토문화] 경비와 식사 업무는 주민들 몫..오라2동 사평마을경찰파견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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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경비와 식사 업무는 주민들 몫..오라2동 사평마을경찰파견소 터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4.19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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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파견소 주둔 경찰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수없이 받았다.

오라2동 사평마을경찰파견소 터
 

위치 ; 제주시 오라2동 1393-1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경찰서 터

 오라2동_사평마을경찰주둔소터(43유적책)
오라2동_사평마을경찰파출소터

 

초토화되었던 오라리 마을 일부가 1949년 3월부터 재건되면서 사평마을에 경찰파견소가 들어섰다.

파견소에 주둔하는 5명 정도의 경찰은 마을성담 쌓는 일을 감독하고 마을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을 주민으로 조직된 특공대원이 2명씩 경찰을 도와서 근무했다.

경비 업무는 주민들 몫이었고, 낮에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초를 서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다. 게다가 경찰의 식사도 주민이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파견소 주둔 경찰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수없이 받았다.

당시 파견소건축위원장과 특공대장을 했던 송주형(2003년 83세)씨는 “자기는 굶으면서도 보리밥에 쌀을 섞어야 했고, 생선 하나라도 올려야 했다. 파견소 이광철 주임의 횡포는 대단했다. 귀한 갈치를 구워서 올렸는데 갈치에 재가 조금 묻은 것을 보고 약을 탔다며 밥상을 걷어찼다. 주민들은 보초를 잘못 섰다거나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지독한 매질을 당했다. 매맞는 것은 일상사였다.”고 증언했다.

『제주4·3 유적Ⅰ』에는 공터인 사진이 실려 있으나 그 자리에 지금은 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파견소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작성 202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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