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8-1)"..상추자 '행복의 길'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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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8-1)"..상추자 '행복의 길'을..(2)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4.2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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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8-1코스탐방기)상추자도는 청정자연이 살아있는 보물섬

 

(상추자올레길 1번에서 계속)

 

 

이곳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추자도 안내판..

섬, 바다, 사람이 동화되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생명의 섬!
한반도와 제주 본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추자도는 상,하추자,추포,황간도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다.


1271년(고려 원종 12년)까지 후풍도라 불리웠으며 추자도라는 지명은 전남 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태조 5년 섬에 추자나무숲이 무성하여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추자교는 다리도 아름답지만 다리위에서 보는 경관이 장난이 아니다.

눈앞에 떠 있는 바다를 향한 장엄한 바위와 멀리 바다위 떠 있는 섬이 마구 가슴을 방망이질치게 했다.
그곳을 따라 해변에는 노란 유채꽃이 활짝 펴 이곳이 제주도임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해안이 절경중의 절경이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산길 위에 핀 꽃들과 멀리 보이는 섬들..
추자도에는 유독 딸기나무가 참 많았다.

 

온 산이 모두 딸기천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얀 딸기꽃이 만발해 있었다.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을 걷다가 바다를 한번 보고..또 산속을 걷고..
그런 길이 계속 됐다.
정상이 가까워 오자 산은 온통 바위산이다.

큰산 정상에서 가까이 또는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섬들이 과연 이곳이 추자도임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이제 능선을 따라 걷는 길..

산위의 등대기념관이 보이는 곳 까지 보여지는 그 길이 또한 장관이다,

 

오르긴 힘든 코스였지만..그 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었다.
양 옆 바다와 함께 비경 중의 비경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란 바다와 산과 들꽃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
우리는 이곳 정상 아래쪽으로 내려와 바람케길 쉼터라는 곳에 잠시 앉아 땀을 식혔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그 자체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제 등대를 향해 계속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추자도올레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는 길이 내려오는 길보다 더 많게 느껴졌다.

 

오르막길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도 아픈 다리근육이 풀리지 않았을 정도로 얼얼한 걸음의 흔적이 남아있다.

추자등대로 가는 길은 이렇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힘든 다리를 끌고 올라 추자도등대에 도착했다.

등대기념관이 있는 이곳에는 '생명의 노래'(박종만 작가)라는 작품 하나와 파로스등대 모형이 조그만 야외 뜰에 전시돼 있었다.
올레길은 이 등대안으로 돌아 나오도록 안내했다.

이곳에서는 아까 우리가 내렸던 상추자가 모두 조망되는 곳이었다.
이렇게 이어진 능선길은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최고의 풍광을 자랑했다.

 

 

 

 

조금 더 걸어가는데..저쪽에서 외국인이 한사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외국인에게는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해 봐야 한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 하니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까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자기 이름은 요셉"이라며 "독일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올레꾼이냐.."고 물으니 "제주에서 28일간 살면서 제주올레를 다 걷고 마지막으로 추자도올레를 찾은 것"이라는 설명.

"나도 똑같다"며 함께 반가워했다.

그런 후 헤어져 그와는 다시 상추자에서 차를 타고 가다 다시 한번 더 마주쳤다.

이런 것이 제주올레의 힘이 아닐까..

우리는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다시 올레길에 나섰다.

 

드디어..
나바론절벽으로 불리우는 나바론 하늘길 안내판이 나타났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나바론절벽이 가까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어진 길은 암벽길이었다.
이 암벽길 내리막으로 내려가니 다시 길고 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절벽과 숲길이 연이어진 길이었다.

이러한 쉼 없이 이어진 절벽 능선길이 진정 추자도올레의 매력이리라..

옆은 절벽..암벽 능선길을 따라 걷도록 돼 있는 이 길은 다른 어느 올레와도 차별화되는 장관이었다.

바다와 산..그리고 암반지역 또 절벽..
그런 길을 걷는다는 것 만으로도 올레는 존재의 의미가 커진다.
이 암벽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나바론절벽같은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추자 북쪽 끝자락에 있는 이 섬을 추자도 주민들은 다무래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무래미는 모세의 기적처럼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따로 되는 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땐섬, 따무래미로도 부른다는 것.

"나바론절벽은 큰산과 독산(혹은 돚산)이 이어진 곳에 있다"는 설명을 이기범 대표로부터 들었다.

따라서 우리가 걷는 산은 큰산이고 우리가 가는 방향은 독산이 된다.

길은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가도록 안내했다.

가다 보니 이 독산은 온통 바위산으로 그 암석덩어리가 거대한 모습으로 정상에 버티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철재사다리가 아주 높은 곳에 아찔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이곳을 코앞에 두고 바다를 바라봤다.

거대한 암석절벽이 바다를 향해 직선으로 내려선 모습이 보였다.

사진을 찍고 보니 영락없는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들이댄 모습이었다.

 

유인택과 김형권에게 이 사진이 "코끼리 같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눈과 귀 코까지 코끼리와 정말 닮았다"며 기이해 했다.
(이 내용은 이기범 대표에게 물어보니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해서 지난 4월22일 제주환경일보에 '(단독)추자도에 숨어있는 코끼리바위(?)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먼저 소개했다)

우리는 나바론절벽 정상까지 좁은 철재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거의 직선으로 올라야 하는 철재사다리는 두 사람이 교차하기가 힘들 정도로 좁았다.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데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마주치니..서로 교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오르는 길 옆에 그렇게 보고싶었던 나바론절벽이 있었다.

마치 큰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고 바다를 향해 기어가듯.. 참으로 거대한 큰 산을 이룬 암석덩어리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날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더욱이 이곳에는 어떤 곳에는 나무와 줄로 만든 보호책이 있었고 어떤 지역은 무방비의 곳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바닷쪽에서 절벽을 찍고 싶었던 나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절벽을 향해 몇 번 사진으로 남겼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낭떠러지의 길.

분명 위험한 선택이었다.

 

 

     
 

허지만 기암괴석이 바다색깔과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자꾸 유혹했다.

이 나바론절벽 정상에서는 상추자가 모두 관망됐다.

우리가 걸어야 할 봉글레산도 바로 앞에 있었고, 상추자앞 먼 바다의 섬들도 모두 조망되는 정상에서 유인택과 김형권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나바론절벽과 독산 사이에는 천연포구가 하얀 백사장과 함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청정한 추자도 바다의 그 깨끗함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절벽과 절벽 사이를 지나듯 암석덩어리의 하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도 보이는 족족 모두가 다 비경이다.

나는 올레길을 따라 내려오다 암벽에 올라 절벽을 사진으로 남기고..전망대에 올라 비경을 보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라 그 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람도 많았다.
고바위 길인데,.우리는 거꾸로 오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길에는 나무데크가 만들어져 걷기에 편했다.
내려오면서 보니..또하나의 볼거리인 말머리형상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말머리..진짜 말머리처럼..

높이 바다를 향해 말이 한 마리 거기에 서 있었다.

 

나바론 하늘길

대서리 소재속칭 '용둠벙'에서 독산,큰산 및 등대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의 바닷쪽 경사면을 나바론절벽이라 부른다.


이 절벽의 능선을 따라 탐방로인 하늘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우며, 깎아내릴 듯한 절벽을 보노라면 오금이 저려 올 정도이다.


나바론절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추자도에 낚시 온 외지인들이 이곳의 절벽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처럼 험하다고 하여 나바론 절벽으로 부르다 보니 지역주민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바론 절벽은 배를 타야 제대로 볼수 있을 것이지만..그 풍광과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름값을 하는 가치를 지니는 곳이었다.

이 길을 따라 다음 코스인 봉글레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해안가를 보니 아낙네 몇이 해조류를 채취하는지 몸을 굽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러운 광경이었다.

 

 

추자도에는 널린 게 해산물이다.

어디서나 누구나 마음껏 이런 싱싱한 해조류를 채취할 수 있는 행복한 길이었다.

제주도에서는 좀처럼 보기가 드문 일이다.

아딜 가나 어촌계소속이라며 바다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추자도는 사람이 살 만한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본 이 곱기만한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아담한 해변을 따라 봉글레산으로 향했다.

이 길 입구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이 묘지들 앞 길 위에 핀 꽃들이 참 곱다.

다시 오르막 길..

오르고 오르니..쉼터가 하나 나타났다.

나는 겨울 옷을 입고 있어서 땀을 많이 흘린 관계로 이곳 봉글레쉼터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올레길은 이곳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바로 옆 둘레길로 가도록 안내했다.

최영장군 사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보는 바다가 일품이다.

멀리 다양한 섬과..숲속길..
그 길을 다 내려오니..기와집 하나가 눈에 나타났다.

 


최영장군 사당이다.

 

최영장군 사당

고려 공민왕23년(1374년) 탐라(현 제주도)에서 원의 목호 석질리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정부에서는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케 하였다.


장군은 원정도중 심한 풍랑으로 이곳 점산곶에서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도민들에게 어망편법을 가르쳐 생활에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이곳 주민들이 이러한 장군의 위덕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지었다고 하며 매년 봄,가을에 봉향하고 있다.


1970년 국고보조에 의해 건물이 복원되었으며 1971년 8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74년 사당 단청 및 담장을 보수함으로서옛모습을 찾게 되었다는
돌로 만든 만내문이 그 옆에 있었다.

 

나는 최영대장신사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린 사당안으로 들어가 참배를 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조국도통대장 최장군신위’라는 위패가 한가운데 놓여 있고 최영장군 영정은 그 옆에 숨은 듯 걸려 있었다.
위폐보다는 최영장군 영정이 한가운데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위폐야 영정옆에 놓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런 아쉬움을 이기범 대표에게 얘기했더니 건의를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영장군 사당을 지나 내려오는 길도 참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추자도는 어딜 가나 이처럼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아름답기만 한 마을이었다.

바다에 떠 있는 암석위로 집을 지으니..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드디어 상추자도 올레길 탐방을 모두 마쳤다.

2시가 넘은 걸 보면 약 3시간은 걸린 것 같다.
우리는 식당으로 달려가 그토록 먹고 싶었던 삼치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땀을 열심히 뺀 데다가 배까지 고프니.. 밥맛이 꿀맛이다.

삼치회에, 굴비구이에, 삽겹살 구이까지..진수성찬을 즐길 수 있었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나선 올레길..

우리는 아까 처음에 내렸던 추자교에서부터 하추자를 걷기로 했다.

추자교까지 이기범 대표가 또 수고를 아끼지 않아주었다.
 

 

 

 

 

 

 

 

 

 

 

 

 

 

 

(상추자도에 이어 하추자도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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