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권학비(?)..노형동 향교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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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권학비(?)..노형동 향교개수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1.1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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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령포(오현단 동쪽) 향교 중수때 세워진 것'

 

노형동 향교개수비


향교개수비 (鄕校改修碑)
위치 ; 제주시 노형동 제주제일고등학교내

 

 

이 비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학비(勸學碑)'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까닭은 상당히 크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비석에는 정면 윗부분에 「濟州鄕校改修○○」이라는 작은 글씨만이 있을 뿐 별다른 글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글을 모르면 적혀 있어도 읽을 수가 없으므로 마치 겉은 있되 속이 빈 사람이나 다름없음을 깨닫게 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학문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의도에서 세운 것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현장의 안내판)

그러나, 향토사학가 김봉옥에 따르면 이 비석은 고령포(지금의 오현단 동쪽)에 향교가 있을 때 신유익 목사(1723∼1724년 절제사겸방어사로 재직)가 향교를 중수하면서 세운 「鄕校改修碑」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석의 건립년대는 서기1724년일 것이다. 원래 비석에는 글씨가 있었다고 하며 얕게 새긴 까닭에 풍화마모되어 글씨가 안 보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풍화마모되었다고 보기에는 글씨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서도 면이 일률적으로 매끈한 점이 이 주장을 의심케 한다.

이 비가 「鄕校改修碑」인 점은 수긍이 가지만 '勸學碑'라고 부른다고 하여도 원래 비를 세운 의도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 제주향교는 1392년 제주성내 교동에 처음 학교로 창건하였는데, 1435년 최해산 목사 때 다시 지었다.

1466년 이유의 절제사가 중건하고, 1536년 심연원 목사는 명륜당을 개축함과 아울러 향학당을 건립하였으며, 1582년 김태정 목사 때 가락천 동쪽 고령전으로 이전하였다가, 1668년 다시 교동의 원래 자리로 옮겼다.

1724년 화재로 소실되자 가락천 동쪽으로 다시 옮겼다가 1754년 남문 밖 광양에 옮겼으나 1827년 이행교 목사가 서문 밖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제주의 문화재 82쪽)

이 비석은 1962년 고령전에서 김봉옥이 발견하여 당시 제주제일고등학교(지금의 삼성초등학교 자리)에 옮겨 세웠다가, 1983년 1월 고등학교의 이설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2cm, 폭 상단 87.5cm 하단 87.5cm이며, 두께는 22.5cm의 직사각형이며 위쪽 귀가 약간 깎여 있다.

높이 75cm, 앞뒤 길이 185cm, 옆 길이 120cm의 대석이 받치고 있는데 대석의 모양이 어떤 동물의 모양이 아닌 기하학적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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