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10)"..'99봉, '송악의 길'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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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10)"..'99봉, '송악의 길'을..(1)"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7.01.15 21: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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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탐방 10코스)제주도의 땅끝,송악산에서 만나는 그 먹먹함..

 

 

 

 

10코스를 걷는 날 아침, 방을 나서려는데 나는 걷는다의 표지 사진 베르나르가 나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마치 “잘 다녀오게,,”하고 말하듯이..

아마 바람 불고 눈보라치는 길을 걸어야 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예시하듯 그의 미소가 이날 아침, 문득 크게 보인 것은..

지난 1월14일(토요일)은 올해 두 번째 올레를 걷는 날이었다.

 

이날 올레탐방은 셋이서 하기로 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유인택과 사업차 서울에서 내려와 일정상 3일을 더 묵게 돼 버린 테프론전문가 김형권이었다.

혼자만 걷던 올레길에 친구가 생긴 것이다.

부지런히 둘을 픽업하고 화순금모래해변까지 가는 동안 이날 제주시나 서귀포쪽 날씨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매우 흐린 날씨였다.

평소대로라면 서귀포쪽은 남쪽이라 날씨가 뒤바뀐 적이 많았지만 이날만은 아니었다.

 

출발지인 올레안내소에 도착한 시간은 10시03분.
제주올레10코스는 스위스 레만호 와인지역하이킹코스와 우정의 길을 맺은 코스라는 설명이 스위스국기와 함께 안내돼 있었다.


유인택은 "그동안 올레를 걸으면서도 증거가 없어서 아쉬웠다"면서 올레수첩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올레안내소 직원은 “가장 춥고 가장 바람 많은 날에 찾아 왔다”며 진심어린 걱정의 말로 우리 일행을 위로했다.
그러나 어쩌랴.
걷는 날이 그런 날인걸..


“우리보다 앞서서 몇 팀이 떠났느냐”고 물으니 “5명이 단체로 먼저 떠났다”고 전해주었다.
10코스를 걷는 동안 날씨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바람도 걷기 힘들 정도로 많이 불었지만 이날은 유독 올레꾼이 많은 날이었다.


홀로 걷는 사람, 삼삼오오, 때로는 부부들.. 등등 많은 사람이 이날 올레10코스를 걸었다
결국 날씨는 올레꾼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스탬프를 찍고 드디어 출발.

 

걷기 시작하자 바로 앞은 금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저쪽 먼곳에서는 엄청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사장 앞쪽에는 그 공사판을 바라보는 벌거벗은 히프 두짝이 나란히 세워져 있고..길은 모래사장쪽으로 안내한다.

이어진 해변 위 조그만 언덕은 화순곶자왈 탐방로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지만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거대한 공사가 진행중이라 출발부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언덕에 오르니 멀리 지난주에 올랐던 박수기정과 월라봉이 보이는 이곳.

보물을 빛내는 공사가 아니라 보물을 없애버리는 공사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 바위언덕에서는 그림같은 화순의 금모래사장이 발아래에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해변의 장관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정경은 그 공사판이 완전히 망치고 있었다.
보면서도 안타깝기만 한 곳.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곳을 지나치자 이제 본격적으로 산방산이 눈앞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올레10코스의 출발은 산방산이었고..그 끝은 송악산이었다.
산방산을 완전히 한바퀴 돌아나오게 된 이 코스는 산방산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렇게 산방산을 가까이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10코스의 초입은 그렇게 산방산의 다양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산방산

산방산(山房山)은 암벽식물지대(岩壁植物地帶)로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보호되고 있다.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 산16번지에 있다. 표고는 395m이다. 조면암질안산암(粗面岩質安山岩)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그 형태가 특이하다.


이산은 신생대(新生代)제3기에 화산회층(火山灰層) 및 화산사층(火山砂層)을 뚫고 해중에서부터 분출하면서 주변지역과 함께 서서히 융기하여 현재와 같은 산 모양을 이루었다.

주상절리(柱狀節理)에 따른 침식흔적 외에도 200m가 넘는 높은 지역에서도 해식(海蝕)으로 받은 흔적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정상부근에는 울창한 난대림(暖帶林)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암벽에는 휘귀한 암벽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학술연구자원으로 1966년 10월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서귀포시청)

 

 

다음은 산방굴사에 대한 전설이다.

 

안덕면 사계리 산방굴사
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아주 오랜 옛날 산방산 굴 속에서 한 계집아이가 태어났다.

그 핏덩어리 계집아이는 지나가던 산 아래 마을 부부가 발견했는데 마침 슬하에 자식이 없던 그들은 산신령이 내린 아이라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데려다 키웠다.

산방산에서 주워 왔다고 해서 이름을 산방덕이라 짓고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어언 십수년이 흘러 이팔청춘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보는 사람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마치 하늘의 선녀가 인간으로 현신한 것 같구나.”
사실 산방덕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암굴의 여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본래 여신이라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길러 준 어버이가 돌아가실 때는 한없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고, 혼자가 된 그녀는 이제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아……,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있었으면…….”


밤이면 달을 보며 한숨짓는 그녀에게 한 남성이 나타났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고승(高僧)이라는 씩씩한 사나이가 틈틈이 찾아와서 외로움을 덜어 주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산방덕은 사랑에 눈을 떠서 그를 열렬히 사모하여 결국은 그와 혼인을 하였고 인간으로서 지극한 행복을 누렸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녀가 혼인을 하자 그녀를 탐내던 뭇남성들이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고을의 벼슬아치로 있는 한 사나이만은 더욱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하루는 느닷없이 포졸들이 들이닥쳐 남편을 잡아가고 가재도구마저 압수해 갔다.

영문도 모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벼슬아치가 찾아와 갖은 위협과 감언이설로 설득하려고 하였다.

벼슬아치의 공세에 견디다 못한 산방덕이는 결심을 하고 정색하여 말하였다.
“좋아요. 당신의 요구를 듣겠어요. 그러나 오늘은 안 돼요. 하루만 여유를 주세요.”


하고 벼슬아치를 돌려 보냈다. 산방덕은 정든 보금자리를 한 번 둘러보고는 곧 집을 나와 산방산으로 올라갔다.


“슬퍼라! 인간 세상에는 악이 가득하구나. 끝없는 고통의 바다로구나. 견딜 수가 없구나.”


산방덕이는 산으로 올라간 즉시 굴로 들어가서 그대로 바위 덩어리로 굳어지고 말았다. 암굴의 여신이 암굴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지금도 산방굴에는 산방덕이 변해서 된 바위 밑으로 한 줄기의 물이 쉬지 않고 뚝뚝뚝 떨어지며 작은 샘을 이루고 있는데 그 물줄기는 산방덕이 인간 세상에서 사랑했던 고승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기막힌 운명과 현세의 고해를 비탄하여 흘리는 눈물이라 전하여진다.(월간 탱자꽃 창간호 6-13쪽)..고영철의 역사기행에서..

 

 

 


산악인인 유인택은 전문사진가처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20여년전 신혼여행때 제주에 와 본후 제주올레를 처음 걸어본다"는 김형권은 "제주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 가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우리가 보아왔던 산방산의 또다른 모습을 보며 걷는 동안 화순곶자왈 지대를 조금이나마 맛볼수 있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곶자왈 이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지형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형이다.

곶자왈은 나무, 넝쿨, 암석 등이 생태적으로 안정된 천연림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산방산도 올라가지 못하게 돼 있고 곶자왈도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그런 코스를 만들어 잠시라도 곶자왈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산방산을 뒤로 하고 걷는 동안에도 산방산은 햇빛을 받아 수도 없이 변화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들길에는 많은 수선화가 피어 예의 그 수선화향을 전해주며 코를 간지럽혔다.
그러나 걷기를 힘들게 한 것은 바람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몸을 날릴 것 같았고 그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날릴 때는 얼굴을 때려 아프기까지 했다.

사계항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오자 이제 형제섬을 보고 가도록 안내한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사계 모래사장.

사계포구에서 송악산 입구까지 가는 길은 형제섬이 또 다른 바다풍광의 맛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모래를 보호하기 위해 길게 호안공사를 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래가 많이 잡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그 공사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지질트레일과 이어진 이 올레코스는 선사시대 사람발자국 코끼리 발자국 사슴 새발자국 등 많은 발자국이 남아있다고 안내돼 있었다.

 

다음은 향토사학자인 고영철 제주문화답사회장의 이에 대한 설명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위치 ; 안덕면 사계리 바닷가
시대 ;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기(1만9000~2만5000년 전)
유형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64호(2005년 9월 8일 지정)


이 유적의 정식 명칭은 '제주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이다.

사람발자국이 발견된 지역은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상모리 경계 해안 일대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모래밭이었으나 기후변화와 해안 시설물 등으로 인한 해류 이동의 변화로 점차 모래가 유실되어 발자국 화석층이 드러났다.


사람발자국 화석의 생성 시기는 퇴적층에 대한 층서 확인을 비롯한 시료에 대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등의 결과와 함께 멸종된 장비류(털 매머드)의 발자국 형성시기 등을 근거로 생성시기를 규명했는데 플라이스토세(홍적세) 말기인 1만9000~2만5000년 전으로 추정했다.
(김정빈 순천대 교수, 김정률 한국교원대 교수,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임현수 극지연구소 연구원 등 공동연구팀, 국제전문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고고과학저널) 인터넷판)


100여점에 달하는 사계리의 사람발자국 화석은 2003년 10월 한국교원대 김정률 교수와 진주교대 김경수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발견이며 대량 발견된 것은 세계 최초이다.

현장에는 사람발자국 화석 이외에도 조류, 코끼리, 소와 사슴, 육식동물, 어류, 무척추동물, 게, 식물, 전복·소라 등의 동물화석과 식물화석이 함께 발견됐다.

후기 구석기 인류의 이동경로 연구를 비롯하여 고고학, 고인류학, 고생물학, 고생태학 분야 연구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형제섬과 함께 송악산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걷는 동안 송악산 입구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로하고 예전에 맛있게 먹었다는 칼국수집을 찾았으나 그동안 그 집은 업종을 바꿔버렸다며 짬뽕을 먹기로 했다.
나는 맛이 별로 없었다.

 

 

 

 

 

 

 

 

 
 

 
 
 
   

 

 

 (사진이 많아 2번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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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하 2017-01-16 09:42:11
우리나라에서 걷기문화의 열풍이 시작된 진원지가 제주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제주에 둥지를 튼지 4개월여가 지났지만 한번도 다녀보지 못했는데 대리 만족 시켜줘서 감사합니다.^^
저도 올레길 답사를 계획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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