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돈,토평 놀라운 문화유산, 유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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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돈,토평 놀라운 문화유산, 유기(?) 아닌가.."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6.10.09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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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커스)제주문화유산답사회 따라 가본 제주의 이야기들 단상..

서귀포시 비석거리

서귀포시 효돈과 토평마을에 이런 숨은 이야기들이 많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제주문화유산답사를 다녀온 지인이 말해 준 우리 마을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따라나선 길이었다.


태풍 차바가 지나간 길목은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나무가 부러지고 계곡의 돌이 사라지고 쇠소깍을 조망하는 전망대 조차 훵하게 망가져 있었다.

망가져 위험한 쇠소깍전망대

명패만 겨우 보이는 해신당

답사가 예정된 토평 막동골 일뤠당에도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겨우 명패만 보일 정도로 심각했다.
더욱이 마을에서는 바닷가에서는 밀려온 쓰레기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문화유산 답사라니..

하지만 그동안 환경에만 신경 쓰다 보니 제주의 숨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일었다.
9일 처음 참가해 본 제주문화유산 답사를 한 후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더 깊어졌다.

 채석장이 있던 곳

이들 모임은 지난 20여년 이상 273차(2016년 10월9일)에 걸쳐 제주문화유산 답사를 해 왔다고 하니 그들의 제주사랑과 더불어 제주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에 대해 더욱 감사함이 느껴졌다.

이날 제주문화유산답사회(회장 고영철)를 따라 나선 첫걸음은 사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전혀 관심밖의 것들로 남아 사라질 수도 있는 유산들이라는 생각이 컸다.

가장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토평마을 비석거리는 왜 비석거리가 됐으며 과연 그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해 관심이 갔다.

 작은 비석이 비석거리의 주인공이다.

 

 비석거리의 주인공 윤구동선정비,한덩어리의 돌로 만들어졌다

위치는 서귀포시 토평동 825-5번지에 있는 비석거리.

비석거리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윤구동 선정비가 그 주인공이었다.


바로 옆에는 고종27-28년 정의현감으로 재직한 송두옥 군수(현감)를 기리는 비석이 더 크게 서 있었지만 비석거리의 주인공은 단연 조그마한 윤구동 선정비였다.


그는 1817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호남지방에서 곡식을 가져와 도민을 구제했고 환모조 2500석을 미리 준비해 두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비문에는 '목사윤구동휼민선정비'(순조18년,1818년 3월)라는 문구와 함께 '기천지재 포공지덕'(굶주림은 하늘의 재앙이오, 배부름은 공의 덕일세)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비석 또한 비석 위 지붕이 돌 한덩어리로 만들어져 특이했다.

옆에 서 있는 송두옥선정비는 또 무엇인가.

그에 대해서는 서귀포시 신효동에도 선정비가 하나 더 서 있었다.

 초라하게 버려진 송두옥선정비

서상효와 신효의 경계선인 조방산동산에 있는 있는 이 비석은 '읍후송공두옥선정'비라고 써 있고 '연출가재 방급민폐'(가산을 덜어내 민폐를 막았으니) '여사시혜 미유전세'(이와 같은 시혜는 전세에 아직 없었다)는 극찬의 글귀가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비석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비문은 화려하지만 초라하게 서 있는 이곳 뒤에는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 있어서인지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비석위에 놓이는 갓돌도 사라진 상태.

송두옥은 구한말 대선단을 이끌던 당대 대부호였고 대정현감을 지낸 바 있어 송대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김윤식의 속음청사에는 송두옥에 대해 “송대정은 제주읍 사람으로 나이는 40여세 너그럽고 후하여 민심을 얻고 있다. 제주, 대정, 정의 3읍 관을 두루 역임했고 집안이 부유하니 남의 원망을 사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채석장이 있던 곳

상효동채석장은 비석을 만들던 곳이라고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위치가 효돈천 상류에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사용하던 이곳에는 곳곳에 비석을 만들던 흔적이 남아 있다.

소안밭채석장이라는 이곳에서 만드는 비석은 암석이 단단하고 연회색이라 치밀하여 이곳 돌로 비석을 만들면 비속에 꽃(돌에 생기는 이끼)이 잘 핀다고 한다.

 구담 김보성 선생의 해설로 답사가 이뤄졌다(효돈 마을성담에서)

이곳 출신인 구담 김보성 선생이 안내한 효돈,토평마을 문화유산답사는 동네소식을 전하던 돌로 만들어진 게시장을 시작으로 상효동 저수지 제방과 수로시설 그리고 상효동 조개물(조씨 성을 가진 이가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수리시설) 하효동 마을성담을 지나 하효동 전화사업 후원비 등을 차례로 돌았다.

이어 신효동 애기업게돌, 구덕찬돌을 지나  이윤의 묘와 포제단-쇠소깍 검은여 여르렛당을 지나 토평동 환해장성, 토평동 5,16도로 표지석 감상에 이어 석주명기념비와 산악인 오희준추모탑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효돈의 애기업은 돌

답사를 하는 내내 제주문화유산 답사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과거의 우리가 말하는 현재'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살아온 그 흔적들과 남은 이야기들..

그 흔적이 지워지면 현재의 우리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처음 참여해 본 제주문화유산 답사는 환경을 사랑하듯 제주문화를 더욱 관심깊게,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는 다짐을 새긴 좋은 시간이었다.

 

▲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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