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뻔뻔하고 몰염치한 세상사와는 다른 자연 세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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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뻔뻔하고 몰염치한 세상사와는 다른 자연 세계의 꽃...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24.05.01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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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꽃 이름, 모데미풀

 

 

아리송한 꽃 이름, 모데미풀

모데미풀(미나리아재비과) 학명: Megaleranthis saniculijolia OHWI

 

5월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온갖 곱고 화려한 꽃들이 제각기 특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계절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맘때쯤이면 도심의 도로변, 아파트 그리고 소공원 등에 다양하고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이름도 모를 별의별 외래종 꽃이 눈길을 끄는 탓에 발밑에 피는 초라한 작은 꽃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치게 됩니다. 하지만 꽃쟁이의 마음을 끄는 것은 주어진 여건을 탓하지 않고 적응하며 계절 따라 절로 피어나는 자생종 야생화입니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는 대부분 소박하고 조그마한 꽃들입니다. 차가운 얼음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다가 따스한 봄 햇살 드나 싶으면 겨우내 품어온 꽃망울을 재빠르게 내밀어 꽃을 피웁니다. 이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참 앙증맞고 정감이 가는 꽃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조상들과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에 식용과 약용뿐만이 아닌 말과 속담, 일상생활과 삶의 과정에 자연스레 깊은 인연을 맺게 된 탓이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꽃 이름도 대부분은 민초의 삶과 더불어 유래, 전설 등이 전해오는 것이 많습니다. 주로 식물의 특성과 형태, 최초 발견지의 지명, 방언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들 꽃 이름을 보면 그럴듯하게 연상이 되는 느낌이나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며칠 전 수시로 함께 꽃을 찾아다니는 꽃쟁이 친구 셋이 멀리 포천시 이동을 지나 광덕산 자락의 계곡을 찾아갔습니다. 우연한 이야기 끝에 모데미풀이 화제가 되어 이 꽃을 만나보기로 한 것입니다. 모데미풀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한국 특산종으로 매우 매력적인 꽃입니다.

그 이름도 외국어인 듯도 하고 어느 지방의 사투리 같기도 하여 독특한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딱히 그렇다고 수긍이 갈만한 게 없이 설만 분분하여 그 이름이 더욱 아리송합니다.

광덕산 계곡은 위도상으로 북위 38도를 넘는 북쪽에 위치하며 백두대간의 북한 쪽 추가령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 기슭의 계곡이므로 북방계 식물이 유달리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에 이르니 깊은 산속인지라 5월을 눈앞에 둔 시기임에도 계곡에는 싸늘한 기운이 맴돌았습니다. 서울에는 온갖 나뭇잎들이 새잎을 내어 연둣빛 세상을 이루어 가고 있는데도 이곳 나무들은 이제야 새 이파리가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얽혀있어 밖에서 보니 빈 가지만 드러나 보이는 썰렁한 숲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숲 안으로 들어서니 겉보기와 달랐습니다. 숲 바닥에는 맑은 시냇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푸른 새싹과 함께 다양한 꽃망울이 부풀고, 꽃도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다른 봄꽃보다 비교적 일찍 꽃을 피우는 바람꽃 종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너도바람꽃은 이미 꽃이 져서 열매를 맺어가고 홀아비바람꽃이 한창 피어나는 중이었습니다.

꿩의바람꽃, 나도바람꽃도 있었고 박새, 동의나물, 미치광이풀이 즐비하게 늘어진 가운데 얼레지와 피나물이 꽃 벌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방 목표로 삼았던 모데미풀은 몇 개체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많이 볼 수 있었던 모데미풀꽃이 몇 년 사이에 이토록 개체 수가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인데... 아마도 탐방 시기가 좀 늦었나 봅니다. 꽃이 지고 나면 아무래도 눈에 덜 뜨여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홀아비바람꽃 사이에서 찾은 모데미풀꽃은 단연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든든하게 받쳐주는 듯한 널찍한 포엽을 바탕으로 왕관처럼 우뚝 세운 새하얗고 깜찍한 꽃송이가 일품이었습니다. 한 줄기 꽃대에 왜소한 포엽과 조그마한 꽃 한 송이를 외롭게 매달고 있는 홀아비바람꽃 더미 속에서 드러난 모데미풀꽃은 군계일학처럼 위풍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풍성한 여러 꽃줄기와 널찍한 포엽, 예리하게 갈라진 잎의 거치도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더하여 하얀 꽃판 가운데 황금빛 꿀샘을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고와도 보이거니와 겨우내 배곯은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에게 푸짐한 선물까지 품고 있는 아량을 지닌 꽃입니다.

찬바람에 바르르 떨면서도 때맞춰 꽃을 피워 내는 자연에의 순응과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이 절로 일어납니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키 큰 나무들의 나뭇잎이 무성하기 전에 빈 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봄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짧습니다. 이 기간에 한살이를 마무리해야 함에도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함께 지닌 모데미풀꽃이 볼수록 대견스럽습니다.

모데미풀(미나리아재비과) 학명: Megaleranthis saniculijolia OHWI.<br>
고즈넉한 숲 바닥에서 위용을 뽐내는, 이름 유래가 아리송한 모데미풀

 

모데미풀은 미나리아재비과 모데미풀속(Megaleranthis)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지리 산록 운봉에서 처음 발견되어 모데미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운봉금매화라 불리기도 하며, 금매화아재비라고도 부릅니다.

속명(屬名) Megaleranthis는 크다는 뜻의 megas와 너도바람꽃의 속명인 eranthis가 합해진 이름입니다. 즉, 꽃이 너도바람꽃을 닮았는데 보다 더 크다는 의미가 내포된 속명입니다.

높은 산 계곡이나 산지 북사면의 습한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운봉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및 설악산 등에서도 자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꽃은 지름 2㎝ 정도로서 대부분의 바람꽃 종류보다 더 큽니다. 하얀 꽃잎처럼 보이는 건 꽃받침조각입니다. 포가 잎 모양처럼 보이며 그 크기도 뿌리잎과 비슷합니다.

줄기잎은 없고 줄기에 난 잎처럼 생긴 포 위로 짧은 꽃자루가 나와 딱 한 송이의 꽃을 피웁니다. 꽃자루는 털이 없고 꽃받침과 꽃잎은 각각 5개씩입니다. 열매는 홀아비꽃대처럼 생겼으나 크기가 특히 크므로 독립 속(屬)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모데미풀의 기준표본이 지리산 '운봉' 지역에서 최초로 채집되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일본 학자 오이 지사부로(大井 次三郎)가 지리산 운봉면 소재 모데미라는 마을에서 처음 발견해 모데미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조사에 따르면 그 지명은 없다고 합니다.

이 마을이 어디인지 확인이 되지 않고 모데미풀이 자라던 마을도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이름의 출처에 의문이 생기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우선 운봉에 모데미라는 마을이 없고 그 자생지도 찾을 수가 없으니 모데미는 어떤 마을 이름이 아니고 '무넘이' 또는 '무덤'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습한 지역에 자라는 모데미풀이 주로 양지에 있는 무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이 어렵습니다. 이명(異名)인 운봉금매화, 금매화아재비 또한 이름이 애매합니다.

금매화는 북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로 꽃이 진한 황금색입니다. 꽃 모양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흰색의 꽃에 금매화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름의 연유야 어찌 됐든 모데미풀은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 특산식물의 하나로서 우리의 귀중한 자연자산입니다. 번식 및 재배가 어려워 한국 특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매력적인 꽃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른 봄 앙상한 빈 가지 사이로 새어드는 가녀린 햇살을 받아 곱고 깜찍한 꽃을 피우며 꽃가루 매개곤충인 꿀벌에 달콤한 꿀을 제공하는 꽃입니다. 매서운 강추위를 강인하게 견뎌내고 이른 봄에 때맞춰 꽃을 피우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베풀 줄을 아는 꽃입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아는 꽃이기에 정의로운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바름을 멀리하고 서로 다름이라는 교언(巧言)으로 상식을 벗어난 위선과 거짓을 행하면서도 뻔뻔하고 몰염치한 인간사(人間事)와는 다릅니다.

거짓이 횡행하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정직하고 올곧으면 바보와 불통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세상사와는 다른 자연 세계의 꽃입니다.

오직 자연 질서를 거슬리지 아니하며 주어진 여건을 탓하지 않고 고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생의 도리를 다하는 한 송이 야생화에 심취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그 맛과 멋을 찾아, 꽃을 찾아 산에 오르렵니다.

-2024. 5. 1. 한 송이 야생화를 닮고 싶어-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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