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8)-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의 ‘제주 관련 시 3수’(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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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8)-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의 ‘제주 관련 시 3수’(1546)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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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8>

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8.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의 ‘제주 관련 시 3수’(1546)

 

(1) 이섭정(利涉亭)

【원문(原文)】

<그림 (1)> 임형수(林亨秀)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이섭정(利涉亭)’

 

【판독(判讀)】

利涉亭在濟州

朝天舘外石磯頭 烟草萋萋雲日幽 滄海極天孤棹

遠 幾人腸斷立汀洲

 

【해석(解釋)】

○ 이섭정(利涉亭) (제주에 있을 때[在濟州])

 

朝天舘外石磯頭(조천관외석기두) 조천관(朝天館) 밖 큰 바위 머리 위에

烟草蔞蔞雲日幽(연초루루운일유) 해무 낀 풀 무성코, 구름 해 가려 그윽하네.

滄海極天孤棹遠(창해극천고도원) 푸른 바다 하늘 끝 간 데, 외론 돛대 멀어져

幾人腸斷立汀洲(기인장단립정주) 몇 사람이나 애간장 태우며 물가에 세웠던고.

※ 운자 : 평성(平聲) ‘尤(우)’운 - 幽, 洲

 

【해설(解說)】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 보면, “조천소(朝天所) 성안 동북쪽에 있는 문루(門樓)를 쌍벽정(雙碧亭)이라 했는데, 선조 32년(1599) 목사 성윤문(成允文)이 중수(重修)하여 연북정(戀北亭)이라 새로 명명하였다.”라고 전한다. 여기서 이섭정(利涉亭)이 쌍벽정의 이명(異名)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림 (2)> 제주인의 목도(木道) - 테우를 이용한 자리돔잡이(*홍정표 사진)

 

정자의 이름인 ‘이섭(利涉)’이란 ‘건너기에 이로움’이란 뜻의 말로서 본래는 《주역(周易)》의 <괘사(卦辭)>에 주로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를테면, 그 책 <익괘(益卦)>에 보면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나무[木]의 도가 이에 행해짐이라.[利涉大川 木道乃行]”라는 표현이 있다.

조천관의 역할이 뭍과 섬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해당하기에 ‘이섭(利涉)’이란 표현을 들어 특별히 정자명(亭子名)으로 삼은 듯하다.

한편 ‘목도(木道)’란 표현은 본래 물에 잘 뜨는 나무의 이점을 활용한 것으로 달리 ‘배 타기’란 말로도 풀이될 수 있다.

이의 용례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목(濟州牧)> ‘풍속(風俗)’조에,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다.[地瘠民貧]”라고 함에서 보인다. 이어서 이를 부연해 설명하길,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목도(木道)의 일’로 생활을 영위한다.

[耽羅 地瘠民貧 惟以木道 經紀謀生]”라고 하였다. 참고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국역본에는 이 부분을 ‘목도질’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무거운 물건을 밧줄로 얽어서 목도체에 걸어 두 사람 이상이 메고 나름이 바로 목도의 일이기에 그렇다. 결국 여기서 ‘목도(木道)의 일’이란 다름 아닌 ‘배 타기’를 뜻하는 말로 쓰인 셈이다.

 

(2) 탐라관(耽羅舘)

【원문(原文)】

<그림 (3)> 임형수(林亨秀)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탐라관(耽羅舘)’

 

【판독(判讀)】

耽羅舘

形勝三分邑 城池一島東 方音驚頓別 風俗喜猶同

日落林鴉靜 天寒野戍空 坐看滄海月 來照酒尊中

 

【해석(解釋)】

○ 탐라관(耽羅舘)

 

形勝三分邑(형승삼분읍) 제주의 빼어난 지세(地勢), 세 개의 읍으로 나뉘었고,

城池一島東(성지일도동) 견고한 요새지는 한 개 섬 동쪽에 위치해 있다네.

方音驚頓別(방음경돈별) 지방 사투리 유별나게 달라 놀라움을 주지만

風俗喜猶同(풍속희유동) 풍속은 오히려 육지와 똑같아 반갑기 그지없소.

日落林鴉靜(일락임아정) 해 떨어지자 숲속 까마귀 소리 고요해지고

天寒野戍空(천한야수공) 날씨 추워지자 들판의 수 자리 비었다네.

坐看滄海月(좌간창해월) 앉아서 쳐다보길, 푸른 바다 위로 뜬 달이라

來照酒尊中(내조주존중) 어느새 술잔 속 달빛 비치며 찾아들어 왔네.

※ 운자 : 평성(平聲) ‘東(동)’운 - 東, 同, 空, 中

 

【해설(解說)】

제주의 3읍 체계인 제주목(濟州牧) ‧ 정의현(旌義縣) ‧ 대정현(大靜縣)이 처음 들어선 게 조선조 태종(太宗) 16년(1416년) 때의 일로서 당시 도안무사였던 오식(吳湜)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정의현성은 본래 성산읍 고성리에 있었는데, 세종 4년(1422년)에 현재의 위치인 성읍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여기서 ‘탐라관(耽羅舘)’이라 명명한 게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 건물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남긴 《남명소승(南溟小乘)》에 보면, 우도 답사를 마치고 정의현에 들렀을 때 마침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1514~1547)의 <탐라관(耽羅舘)>이란 시가 시판(詩板)으로 걸려있음을 보고 ‘평성(平聲) 동운(東韻)’의 차운시(次韻詩)을 써서 남긴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정의현 객사(客舍)를 두고 ‘탐라관’이란 호칭을 썼던 게 아닌가 하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림 (4)> 정의현 객사(客舍) *<제주환경일보> 제공(강부언 그림)

 

참고로 백호 임제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절제사(節制使) 임형수(林亨秀)가 현판에 남긴 시 한 편이 있는데, 그 시의 ‘해 떨어지자 숲속 까마귀 소리 고요해지고[日落林鴉靜], 날씨 추워지자 들판의 수 자리 비었다네.[天寒野戍空]’란 글귀에 감회가 일어서 화답하였다.

 

吾憐林節制(오련임절제) 내 임(林) 절제사(節制使)를 좋아하거늘,

義氣滿天東(의기만천동) 의기(義氣)가 동천(東天)에 가득 찹니다.

生世嗟相後(생세차상후) 세상에 조금만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淸尊恨未同(청준한미동) 맑은 술 함께 나눴을 텐데 못내 한스럽네요.

英魂落何處(영혼하낙처) 정령(精靈)은 어느 곳에 머물러있나요,

滄海杳連空(창해묘연공) 푸른 바다 아득히 하늘과 맞닿아있는데.

感激留佳句(감격유가구) 남기신 멋진 시구에 감격하여서

孤吟夜政中(고음야정중) 한밤중에 홀로 읊조려봅니다. ”

 

조금만 늦게 세상에 태어나셨더라면 자신과 더불어 술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함을 못내 아쉽게 여긴다는 시문의 내용은 백호 임제다운 장쾌한 시풍(詩風)에서 나온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금호 임형수와 백호 임제는 고향이 전라남도 나주로서 동향인(同鄕人)이라 일컬을 수 있는데, 실제 연령차로는 금호가 백호보다 35세 연상이 고, 같은 임씨(林氏) 성을 공유하면서도 금호가 평택임씨(平澤林氏)인데 비해 백호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서 서로 약간 구분 된다.

 

(3) 용두암(龍頭巖)

【원문(原文)】

<그림 (5-6) 임형수(林亨秀) 칠언절구(七言絶句) ‘용두석기(龍頭石磯)

 

【판독(判讀)】

龍頭石磯在濟州

幽窟龍盤為舉頭 應貪節制好風流 滄波日落生新

興 綠酒杯深蕩奮愁 穴老毛興雲萬古 灘鳴黃犢月

千秋 使君不是流連飮 為惜風光却少留

 

【해석(解釋)】

○ 용머리 큰 바위[龍頭石磯] (제주에 있을 때[在濟州])

 

幽窟龍盤為舉頭(유굴용반위거두) 깊은 굴에 서렸던 용, 고개를 쳐들었으니

應貪節制好風流(응탐절제호풍류) 풍류 좋아하는 절제사, 응당 탐낼 수밖에.

滄波日落生新興(창파일락생신흥) 창파(滄波) 일고 해 지니 새로운 흥 생겨나

綠酒杯深蕩奮愁(녹주배심탕분수) 녹주잔 술 가득하니 분함과 근심 사라지네.

穴老毛興雲萬古(혈노모흥운만고) 만고에 구름 덮인 옛 유적 모흥혈(毛興穴)과

灘鳴黃犢月千秋(탄명황독월천추) 천추의 달 여울물 소리 황독탄(黃犢灘)일세.

使君不是流連飮(사군불시유연음) 목사는 취기로 연달아 마심에 내맡기지 않아

為惜風光却少留(위석풍광각소류) 다만 좋은 풍광 애석해 잠시 머문 것이라오.

※ 운자 : 평성(平聲) ‘尤(우)’운 - 頭, 流, 愁, 秋, 留

 

【해설(解說)】

제주 목사로 부임해 와 한 해 정도 머문 금호 임형수는 ‘이섭정(利涉亭)’, ‘관덕정(觀德亭)’, ‘탐라관(耽羅舘)’ 등의 제주 관련 시를 몇 편 남겼는데, 용두암(龍頭岩)을 노래한 이 시 또한 당시의 소회를 잘 담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녹주잔에 술 가득 부어 술을 마시니 분함과 근심이 모두 사라지네.[綠酒杯深蕩奮愁]”라고 한 이 표현 하나로 작자의 심경을 얼추 헤아릴 만하다.

<그림 (7)> 용두암의 위용(威容) (*사진출처 : <아름다운 제주>)

 

아마도 이날 낮에는 모흥혈(毛興穴)을 둘러보고 난 후 저녁 해 질 무렵에 용두암을 찾은 것 같다. 여기서 황독탄(黃犢灘)이라 한 곳은 용두암과 용연을 잇는 ‘한두기 포구’를 두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한두기 포구의 한자어 표기가 ‘대독포(大瀆浦)’인 점을 떠올려 생각하면, ‘대독(大瀆)’이나 ‘황독(黃犢)’은 같은 의미의 단어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시를 소개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에 보면, 시어의 한자어 표기가 다소 달리 쓰인 게 드러난다.

여기서는 ‘황독탄’을 ‘黃瀆灘’이라 표기했고, ‘용반’은 ‘龍蟠’으로, ‘탕분수’는 ‘蕩舊愁(탕구수)’로 표기했으며, 제목 또한 ‘용두서기’ 대신에 ‘龍頭巖’이라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금호 임형수가 지은 이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운자를 써서 새로 지은 시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제주 목사로 부임한 지 만 1년이 되는 때에 금호 임형수는 조정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고서 파직되어 돌아갔다. 명종 2년(1547)에 벽서사건(壁書事件)이 일어나면서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4세에 사약을 받고서 운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그의 이런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여 김인후(金麟厚)는 시조시 한 수로 이렇게 조상(弔喪)했다.

 

“엊그제 버힌 솔이 낙락장송(落落長松) 아니런가 /

적은 덧 두던들 동량재(棟梁材) 되리러니 /

이후에 명당(明堂)이 기울면 어느 남기 받치리.”

 

그 뜻은 대강 이렇다. 엊그제 잘라버린 소나무가 바로 곧고 높게 잘 자란 소나무가 아니더냐. 좀 더 한동안 그대로 남겨두었던들 기둥이나 들보로 쓸 만한 큰 재목이 되었을 터인데 잘라버렸으니 아깝기도 하여라. 훗날 혹시나 대궐 안의 정전(正殿)이 기울어지기라도 한다면, 어디 또 그와 같은 재목이 있어 쓰러져가는 전각을 떠받쳐 바로잡을 수가 있겠는가.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 보면 제주의 역대 재임 목사 중 명환(名宦)의 한 사람으로 그를 들고 있으며, 철종 1년(1850) 봄에는 장인식(張寅植) 목사가 그의 업적을 기려서 영혜사(永惠祠)에 종향(從享)케 하기도 했다.

 

<각주모음>

1)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1514~1547)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전라도 나주(羅州) 태생이다. 18세의 나이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22세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합격한 후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그 이후 관으로 진출해 병조 좌랑, 회령부 판관, 이조 좌랑, 이조 정랑, 장령, 사간 등을 역임하다가 인종 1(1545)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제주 목사로 좌천되어 왔다가 부임 만 1년만에 파직되었다. 그 후 명종 2(1547)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말려들어 사사(賜死)되었다. 저서로 후인들이 엮어 만든 금호유고(錦湖遺稿)가 있다.

2) 利涉亭(이섭정) : 조천포구 쪽 현재의 연북정(戀北亭)의 전신(前身)인 듯하다. 본래 이섭(利涉)’이란 말은 주역(周易)익괘(益卦)에 나오는 큰 냇물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나무[]의 도가 이에 행해짐이라.[利涉大川 木道乃行]”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3) 石磯(석기) : 물가에 불거진 큰 바위.

4) 萋萋(처처) : 초목이 우거진 모양.

5) 城池(성지) : ‘金城湯池(금성탕지)’의 준말로, 쇠로 만든 성곽과 펄펄 끓는 물로 채워진 해자(垓字)라는 뜻으로, 견고한 요새지(要塞地)를 말한다.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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