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 이야기

기사승인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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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이란 공동 지식, 즉 자신과 함께 공유하는 지식을 의미한다.

   
 

‘양심적병역거부’라는 표현이 맞느냐, ‘종교적병역거부’가 맞느냐, ‘군대 가는 사람은 비양심적’이라는 말이냐, ‘양심’이라 하지 말고 ‘신념’이라 해라는 주장은 다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냥 그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어 사용되어온 표현ㅡ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ㅡ이라 생각하면 표현 방법을 가지고 별로 논쟁할 중요한 사안은 아닐 것이며 그 어느 것이라도 좋을 듯싶다.

다만, 지상의 생명체 중에 짐승에게는 없지만 인간에게만 주어진 ‘양심’이라는 도덕기능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을 감지하여 그에 반응하도록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신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든, 저절로 지니게 된 것이든 간에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에 ‘양심의 자유’를 명시해놓음으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시금석 역할을 하게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실상 법률기능이 어떤 사람이 평화와 선을 추구하려는 자유로운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방향으로 빗나갈 때, 그것은 분명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우리가 절박하게 고민해야 할 보편적인 인권문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며, 국가는 피 고용수단이며, 헌법은 국민과 국가 간의 고용 계약서라는 전제로 볼 때, 비대해진 국가권력이 횡포를 막기 위한 장치(마지노선)가 바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조항일 것이다.

사람들이 나타내는 예절이나 자비로운 동정심 같은 선한 마음이나 생각이 단지 내면에만 머물러 있고, 행동으로 나타내는 동기의 발로가 수반되지 않을 때, 어떻게 그 가치를 발휘하겠으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을지를 신중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할 때만, 양심의 자유가 표현되는 일이 타인을 해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음에만 머물러있어야 하고 내면에서 나와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부터 법률에 의해 제한 받을 수 있다는 사고를 탈피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양심(conscience)이란 그리스어 단어 ‘시네이데시스’라는 말의 의미는 함께를 뜻하는 ‘신’과 지식을 뜻하는 ‘에이데시스’에서 나온 합성어로 된 말이란다. 따라서 양심이란 공동 지식, 즉 자신과 함께 공유하는 지식을 의미한다.

양심이란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에 대해 판단하거나 재판하고,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양심은 자신과 함께하는 지식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보게 된다. 즉 그 사람이 성장해온 문화·배경·환경에 따라 갖게 된 지식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상가운데서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양심을 구사하는 일로 인해 자긍심을 유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는 일부다처가 정상적이며 아무도 그런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성장해온 문화·배경·환경에 따른 지식과 함께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양심은 확연히 다르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장해온 문화·배경·환경에 의해 갖게 된 지식에 따라 형성된 양심은 그런 행위(일부다처)를 결단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심기능이 작용하는 양상을 보면 이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내린 양심에 대한 정의ㅡ“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ㅡ와 일맥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병역거부자들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양심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성경의 법,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지식에 따라 훈련되고 형성되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같은 신념에 매어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병역자원으로 사용되기에 과연 적합한 일인지 여부와, 그렇지 않을 경우 이와 관련된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해법을 모색해보는 사람이라면,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큰 잔치를 준비하느라 식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웃집을 들여다보니, 이웃과 친족들도 함께 일을 거들어주고 있다. 손님 맞을 돗자리와 식탁도 준비하고, 음식도 장만해야 하는데, 한 아들에게 식육점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고기 삶는 일을 시켰더니, 다른 일은 몰라도 그 일만은 도저히 못하겠단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맡도록 하고는 그 아들에게는 채소를 사다가 씻는 일을 시켰더니 그 아들은 그 일은 흔쾌히 받아들여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잔칫상에 올라갈 음식에는 ‘고기요리’만이 아니라 ‘채소요리’도 필요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아들을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여기며 곁눈질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 따돌리지 않고, 그에게 다른 일을 하게 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협력하며 차질 없이 잔치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적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와 복무기간을 두고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해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손에 쥐어진 총이, 발사되기는 하지만 총탄이 부드럽게 날아가다 불과 한발자국 앞에 사뿐히 떨어지는 비눗방울과 같다면, 그런 총은 전투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무기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을 전장으로 강제로 내보낸다 하더라도 그들이 형성되어온 양심은 이미 그리스도의 교훈에 매어있기 때문에 도저히 총을 쏘지 못할 사람들이다.

이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방아쇠를 당겨도 총탄이 비눗방울처럼 바로 발 앞에 사뿐히 떨어지는 장난감 같은 총이 전투무기로는 부적합한 것처럼, 양심적병역거부자들은 병역자원으로 활용하기에는 부적합한, 달리 말하자면 병역자원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로 양심적 병역거부 입장을 나타내온 여호와의 증인들이 세금은 납부하면서 자신들이 낸 세금이 국방비로도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양심상의 결정이 모순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리용 기구인 식칼이 다른 사람을 상해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해서 식칼제조업자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다는 점을 추리해볼 때, 세금관련 책임소재를 구분 짓는 일은 그리 납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희귀하기는 하지만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예컨데 '양심적 납세거부' 행위는 자유권 규약 제 18조(양심 및 종교의 자유)의 보호범위 밖에 있다고 결정한 사례는 참고가 되리라 본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양심상의 결정이 확고하게 법의 보호를 받는 경우는 ‘병역거부’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도 유의해볼 대목일 것이다.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해 또 하나 생각해 볼만 한 점은, 잔치준비를 거드는 사람들 중에 직접 고기를 사다 삶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아들로 인해 심각하게 혼란을 겪지 않았으며, 그에게 다른 적합한 일을 시킨 점일 것이다. 왜냐면 잔치행사엔 ‘고기요리’만 필요한 게 아니라 ‘채소요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일 가운데는 ‘현역복무’만이 아니라 비 군사분야의 ‘대체복무’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치를 준비하는 집에서는 채소 일을 맡은 아들에게 필요이상의 시간이나 작업량을 요구해서 벌을 주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양심적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기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웃나라에서도 대체복무 마련을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를 염려해서 처음에는 복무기간을 길게 잡았다가, 양심적병역거부자들 외에는 지원자들이 없어서 결국 복무기간을 낮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문제는 국제표준을 따르면 되는 것이므로 이 역시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라 생각해 본다.

물론, 관련된 사실에 접근하고 이해하기 까지는 점진적인 과정이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사실 양심적병역거부 역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심적병역거부의 근.현대역사적 흐름의 과정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문제를 누누이 직면하다 보니 사람들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점진적으로 달라지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꿔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양심적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 중에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역시 고민해온 문제 중 하나였다. 그런 나라 중에는 세계대전 중에, 분쟁이 치열한 상황이거나, 분단상태인 나라들에서 조차 종종 겪어온 문제였다. 하지만 한국은 오랜 기간이 걸렸을 뿐 지금 해결의 시점을 앞두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가치라고 판단하던 시기에는 양심적병역거부가 언급될 때마다 상당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줄곧 ‘무슨 광신도들이나 가질법한 착각에 빠진 자들의 착오’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조차 유죄판결로 일관하던 동일한 유형의 형사기소 건에 대해 지금은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양심적병역거부라는 표현에 나오는 ‘양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라는 말인가?’ 라고 반문하던 사람들조차도, 지금은 다는 아니더라도 ‘그때 공연히 열 받아 했군!’하고 생각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이웃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서 타산지석을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에 접근하고 이해하기까지는 점진적인 과정이 있다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서병휴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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