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읍사무소 민원실의 작은 청렴

기사승인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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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희 한림읍사무소 주무관

   
윤태희 한림읍사무소 주무관

민원실에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러 오신 할머니가 고맙다며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잘 여문 양파가 몇 개 담겨있었다. 이 정도 성의는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혹 실례가 아닐까. 양파를 받아 집에 가져가면 맛있는 국수를 해 먹고 복더위도 무사히 건너련만. 끝내 사양했다. 할머니는 섭섭한 표정으로 양파봉지를 들고 귀가하셨다.

비슷한 일이 종종 있다. 드링크류 박스를 두고 가는 민원인을 쫓아 현관 밖까지 뛰어나가 되돌려 드린 적도 있다. 복잡한 업무를 처리한 민원인이 건넨 음료수를 거절하는 일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이 청렴인가.

보통은 청렴을 이야기할 때 수백 수천 돈이 오가고 큰 이권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린다. 읍사무소 민원실에서 400원짜리 등초본이 오가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모든 일은 사소한 데에서 시작되는 법. 몇 백 원짜리 서류도 허투로 다루지 않고 규정에 따라 정확하게 발급하는 사회에서, 양파 한 봉지 쉽게 받지 않는 사회에서야말로 비리는 발붙일 자리가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도덕의 잔 근육을 기른다 하는데,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의 취지란 이런 것이다.

직원과 민원인은 공적인 관계이고 우리의 일은 정해진 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데 불과하지만 직원은 눈앞의 민원인에게 ‘인간적인’ 정성을 다하므로 민원인이 고마워하는 건 자연스럽다. 여기까지를 ‘정’이라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청탁과 뇌물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접근한다. 이를 떨치고 규정대로 하는 것 또한 청렴이다.

예컨대 민원실에서 신분증을 안 가져온 민원인을 돌려보낼 때, 직원들도 인간된 정리로 안타까워한다. 융통성 없다 하지 마시고 미미한 청탁마저 물리치니 청렴하구나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사회의 모습은 시민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한다. 오늘도 민원실에서는 공직자와 민원인이 함께 청렴사회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윤태희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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